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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각장 허길량 ‘33비천상’展-2014년 1월 8~16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

작성자
경산
작성일
2014.01.12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156
내용

회한의 세월 10년,
허길량! 날자, 다시 날자꾸나

 

우리시대 대표 목조각장 허길량 ‘33비천상’展
1월 8~16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

 

질곡과 회한의 세월 10년, 이제 그만 훌훌 털고 날자꾸나!
벽에서 종이에서, 범종에서 털치고 나와 하늘을 나는 비천처럼
불모(佛母) 허길량, 이제 훨훨 날아보자꾸나!

 

우리나라 목조각의 정통 맥을 전승하고 있는 불모 허길량 선생이 오는 1월 8일부터 16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소나무 비천 되어’를 주제로 12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지난 2002년 ‘33관음전’을 가진 후 꼭 12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에서 허길량 선생은 가히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조각한 비천상 33점을 선보인다.


 

다공양 비천. 

바라주 비천.

 

이번에 전시될 비천상은 둘레가 지름 80센티 정도 되는 소나무로 조각했다. 소나무는 강원도 목상들에게 지난 10여 년에 걸쳐 어렵게 구했다. 정말로 하나, 하나 자식 구하듯이 정성을 다해 구한 나무들이다. 비천상은 하나의 통나무로 만들었다는 데 특징이 있다. 접목을 하거나 이어붙인 것이 없고 초인적 집중력으로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나무를 깎고 다듬어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비천상은 조각 기법상 불상보다 몇 재는 더 어렵다. 고도의 기술, 기교, 예술적 안목이 겸비되지 않으면 엄두를 내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또한 표면을 사포로 문지르지 않고 오직 조각칼로 다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33점을 새긴 것은 도리천을 포함해서 불교에서 말하는 33천을 의미한다.


비천상의 손에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지물은 조각해 얹었다. 음성공양 비천상에는 악기, 꽃공양 비천상에는 연꽃, 차 공양 상에는 찾잔, 과일공양 상에는 과일 등 갖가지 소중한 공양물을 조각해 공양을 올렸다. 허 선생은 따라서 ‘33 비천’은 ‘공양 비천’이라고 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정병무 비천. 


 

부조를 제외한 비천상 조각은 그동안 없었다. 그래서 많은 생각과 고민이 따랐다. 나무 선택도 중요했고, 한결같은 나무가 소나무이기에 소나무를 재료로 선택했다. 천년이 가는 나무가 소나무이므로 허길량 선생은 평소 소나무를 아주 좋아한다.


이 비천상에는 허길량 개인사의 애환이 깃들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후 만 3년이 되었을 때, 그만 모함에 의해 송사에 휘말리면서 지정 해지가 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것이 과거의 업보인가 생각했으나, 그는 끝없는 실의에 빠졌다.

 

번민과 회한의 시간을 보내며 방황하다가 그래도 장인은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조각칼을 들었다. 그 때부터 구상하고 새긴 것이 바로 이번에 전시되는 비천상들이다. 소나무와 비천상, 그리고 불모 허길량이 만나 새로운 목조각의 장르가 펼쳐진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거니와, 비천상 조각은 정교한 기교, 기술, 그리고 인내를 보유한 장인이 아니면 엄두도 낼 수 없는 고도의 난이도 작업이다. 게다가 고도의 집중력을 갖추지 않으면 하나의 나무로 접목 없이 조각을 완성하기 어렵다.

 

허 선생은 무형문화재 지정 해지 이후 자신을 다스리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마음으로 비천상을 조성에 매진했다. 한 작품 완성하는데,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이 걸린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비천상이 있느냐는 질문에 딱히 특별한 것은 없단다. 다만 난이도 높은 비천상에 아무래도 정이 더 가는 것 외에는.


작품의 크기는 평균 높이 90센티미터, 넓이 60센티미터 정도다. 마감은 옻칠을 했는데, 옻칠 후 헝겁으로 여러 차례 닦아내는 기법(일본말로 스리)을 사용했다. 나무 결을 그대로 살려내기 위해서 이 작업 역시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전시회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처음 예술의 전당에 대관 신청을 했을 때, 종교작품이라고 이유로 불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작품의 예술성을 인정해서 어렵게 전시가 가능했다.


이 작품을 미리 본 관련 전공 교수나 전문가들은 우선 조각의 예술성에 하나 같이 놀랐다.  너무나 날렵하고 리얼해서 톡 치면 떨어져 나갈 것 같다는 찬사와 함께, 붙여서 조각을 하지 않고 통나무로 조각한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허길량 선생는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목공예 분야에 입문해 서수연 스승과 이인호 선생으로부터 불화와 단청을 익혔고, 1980년부터 마곡사 우일(又日) 스님 문하생으로 입문하여, 도상, 의식기법을 전수받은 전형적인 장인으로서 2001년 국가로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으로 지정받았다.

 

그리고 2002년 ‘33관음 속으로’를 주제로 개인전을 열어 놀라운 예술성을 지닌 작품으로 불교계 및 목조각 분야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고통을 겪은 후 12년 만에 재 비상의 날개짓을 힘차게 시작하는 것이 이번 33비천상 전시회다.

 

 

오롯이 45년을 목조각만을 고집하며 작업해온 허길량 선생(오른쪽 사진)은 경기무형문화재 제49호 한봉석 목조각장, 전북무형문화재 제42호 임성한 목조각장을 배출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목조각장이다.

 

이미 최고의 기예를 갖춘 그에게 있어 무형문화재 지정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맥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목조각 분야의 전승을 위해 후학을 양성하는 데 무형문화재라는 타이틀이 매우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을 뿐이다. 


허길량의 손끝으로 인해 그동안 그림으로, 부조로만 있던 비천상들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탱화에, 벽화에, 탑신에, 범종에 붙어 있던 비천들이 꿈틀 하늘로 날아오른 것이다.


“불상 조각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예술적으로 함께 충족되어야 하지요. 그래서 어렵습니다. 불모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그 모습이 여법하게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평생 술·담배를 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청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상원사 중대 조각을 할 때, 당시 주지이셨던 임광스님이 청정한 목조각장을 찾다가 저를 만나게 되었는데, 어쩌면 술·담배 안한 덕을 그 때 톡톡히 보았지요.”


오대산 중대에 들른 강원도지사가 허길량 선생의 조각을 보고, “이 작품을 보고 감동하지 않는다면, 간, 쓸개가 없는 사람일 것”이라는 찬사를 보냈다는 소식을 임광 스님으로부터 전해듣고 한 없이 뿌듯했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는 허길량 불모. 금오, 보응, 일섭, 우일스님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영광스럽게 잇고 있는 그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이 시대의 대표 장인으로서 그 맥을 이어가고, 제자를 길러 전승을 하는 일대전기가 마련되기를 그를 아는 지인들은 한 마음으로 기원하고 있다.


허길량 선생은 이번 ‘33천 비천상’ 전시를 마친 후 기회가 생기면 뉴욕, 유럽, 일본 등에서도 전시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특히 유럽 쪽에서의 전시를 희망하고 있다. 작품을 판매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정말로 인연이 되는 분이 나타난다면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다며 활짝 웃는다.


일찌감치 주제가 있는 전시를 해온 허길량 선생은 불모 중에 철학을 갖춘 몇 안 되는 불모로 손꼽힌다. 


“장인은 작품으로 말한다”, “교리에 어긋나면 불교조각 아니다”라는 소신으로 작업을 해온 허길량 선생은 그동안 성덕대왕 신종, 수덕사 대웅전, 여주 신륵사 석등 등 성보에 새겨진 비천의 문양을 초로 삼기 위해 전국을 순회했다. 그리고 <무량수경> 등 경전에서 묘사된 천인을 떠올리며 조각을 했다. 그의 작품이 단순한 미술품이 아닌 불교조각이자 성보인 이유이다.

 

 전시장 : 02) 580 -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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